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딱딱한 역사의 이야기는 이야기 형태로 반말로 쓰여져요.
희생자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악녀의 기록 - 루크레치아 보르자.
루크레치아 보르자로 추정되는 초상화 - 바르톨로메오 다 베네토 作
역사에 관한 기록이란 언제나 승자에 의한 기록이기 때문에 가끔 정말 억울한 사연들을 곧 잘 접하게 되는데,
오늘 이야기하게 되는 여인 또한 역사에 의한 희생, 혹은 가문에 의한 희생자임에도
당당하게 "악녀"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있는 여인에 관한 이야기야.
알단,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에선 그녀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짤막하게 한번 살펴볼께.
(위키백과에선 그녀에 일생에 관해 꽤나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음으로 윗부분만 불러올께.)
루크레치아 보르자(이탈리아어: Lucrezia Borgia, 1480년 4월 18일 ~ 1519년 6월 24일)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와 반노차 카타네이의 외딸이다. 그녀의 형제로는 체사레 보르자, 후안 보르자 그리고 호프레 보르자가 있다.[1]
루크레치아의 가족은 훗날 르네상스 시대 교황들의 특색이라고 주장되는 냉혹한 마키아벨리주의의 정치와 성적 타락의 전형이다. 루크레치아는 팜므 파탈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등장인물로 등장하는 수많은 미술품과 소설, 영화 등이 존재한다.
바르톨로메오 다 베네토의 가공 초상화와 같은 몇몇 그림이 루크레치아를 묘사한 것이라는 소문이 있지만, 그녀의 초상화 가운데 확실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
역사상 루크레치아의 확실한 신상과 그녀의 활동에 관하여 그녀의 아버지나 형제의 범죄에 연루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의 아버지 또는 형제는 그들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그녀를 중요 인물이나 세력가와 결혼시키는 데 어느 정도 일조하였다. 루크레치아는 조반니 스포르차(페사로의 영주), 아라곤의 알폰소(비셸리에 공작) 그리고 알폰소 1세 데스테(페라라 공작)와 결혼하였다. 두 번째 남편인 아라곤의 알폰소는 나폴리 국왕의 서출이었으며, 그의 정치적 가치가 떨어지자 체사레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붙여넣기 ㅇ_ㅇb
자, 그럼 이번 이야기도 내 식대로 마음대로 대화체를 섞어가며 알기 쉽게 그리고 흥미롭게 풀어볼께.
아주 아주 옛날. 그러니까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보다는 훨씬 후이며, 유럽에서 가장 찬란한 문화를 발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고 부도덕한 시대로 기록되고있던 15세기의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한 귀족 가문이 있었어. 보르자, 혹은 보르지아로 불리는 가문이 있었는데,
기록으로 찾아보면 1400년대부터 1500년대까지 교회와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교황을 2명이나 배출해냈고, 정치에서도 여러명이 두각을 나타냈던 아주 위대한(?)가문이 있었는데,
이 가문은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사상 최초의 범죄 집안이며, 이탈리아 마피아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집안에서
1480년 4월 18일에 태어난 여인이있었어.
당시의 시대는 교황이 결혼은 할 수 없지만 암암리에 자식들을 낳았고, 그 자식을 자신의 자식으로 인정하여
자신들의 세력을 세습하던 시절이었는데, 오늘 이야기를 하게 되는 여인 또한 위키백과에서도 설명하듯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외동딸이야.
잠깐 그녀의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넘어갈께.
교황 알렉산데르 6세.
그의 재위기간은 1492년 8월 11일부터 1503년 8월 18일까지로 11년간 교황을 지낸 사람이야.
그는 교황 갈리스토3세의 조카이며 1456년 추기경이 되고 1458년 발렌시아의 주교가 되었지.
정치적인 수완이 뛰어났다고 하고, 여러 주교 관구들과 다른 성직록을 차지함으로써 엄청난 부를 축적했을 뿐아니라,
그로 인해서 로마의 유력자들과 골고루 인맥을 쌓은 아주 야심찬 교황이었어.
교황 알렉산데르 6세
당시 그의 평판을 잠깐 들어보면,
'사상 최악의 교황' 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정도로 탐욕적이고 호색한이었대.
그가 세간에 비난을 받는 원인 중에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잠깐 소개하자면,
그가 교황에 당선된 콘클리베 전날 밤까지의 상황은 음.. 쉽게 표현하자면
유력한 후보가 세 명있었고, 그에 비해 스페인 태생으로 인해 불리한 조건에 놓인 보르지아까지 4명의 후보가 있었는데,
델라로베레라는 후보는 프랑스의 샤를 8세가 지지자로 나서 많은 추기경들을 그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막대한 뇌물을 뿌릴 정도로
아주 강력한 후보였는데, 보르지아가 추기경 시절 여러 성직록을 역임하면서 긁어모아두었던 돈이 아주 어마어마 했던 가봐.
샤를 8세보다 훨씬 더 많은 뇌물을 주었고, 자신의 정치적 경험을 십분 발휘해서 딱 한표만 더 얻으면 교황이 되기 직전이었어.
이에 보르지아는 하나의 꼼수를 생각해 내는데,
당시 추기경중엔 96세의 베네치아의 추기경이 계셨는데,
그는 노인의 흐릿한 판단력을 공략하기로 했고 그분께 찾아가 자신의 장점들을 어필하기 시작했지.
당시 사리분별이 어려울 정도로 노쇄한 베네치아 추기경은 그에게 한표를 던졌지.
이를 잘, 살펴보면 교황직을 돈으로 산거나 마찬가지잖아.
훗날 뇌물 증여가 세상에 알려져서 그가 삼층관을 돈으로 샀다는 비난을 받게 됐어.
아, 너무 돌아왔지. 미안.
무튼 이렇게 루크레치아의 아버지인 알렉산데르 6세는 어마어마할 정도의 탐욕을 가지고 있는 교황이었는데,
뭐, 역사서에는 "뛰어난 지도력을 갖춘 군주" 라는 의견이 대다수야.
자, 이젠 가문에 의해 무참히 희생되고 역사서에 "악녀"로 기록되어있는 오늘의 주인공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교황 알렉산데르 6세에겐 결혼을 하지 못함에도 불구, 그가 인정한 자식으로 4남매를 두고있는데
체사레, 후안, 루크레치아, 호프레가 가장 유명해.
그중 루크레치아만이 유일한 딸이었는데,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누구나 한번이라도 그녀와 마주치면 미모에 대한 찬사를 바치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금발을 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고 해.
그녀는 살아 생전 아버지의 정치적 야심으로 인해 세번의 결혼을 하게 되는 비운의 여인인데,
그녀의 비운은 체사레, 즉 그녀의 오빠로부터 시작돼.
그녀의 이야기를 하자면 그녀의 아버지와 호색한에 정치적 야망이 큰 그녀의 오빠 체사레에 대해서 빼 놓을 수 없는데,
1475년 생인 그는 벨렌티노와 로마냐의 공작이었고, 안드리아와 바나프로의 군주였으며 디오이스의 백작임과 동시에
피옴비노, 카메리노, 우르비노의 지배자이고 교회군의 총 사령관이었어.
그는 잘생긴 외모와 훤칠한 키를 아버지에게 고스란히 물려받았는데 물려받은게 외모 뿐이었으면 얼마나 좋아.
그 아버지의 끝없는 야심과 호색한적인 부분까지도 고스란히 물려받았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든든한 배경덕에 18살의 젊은 나이로 추기경이 될 정도로 탄탄 대로인 그는
동생을 죽이는 파렴치한 폐륜을 저지른 장본인이야. 자 이 이야긴 차차 해볼께.
이야기가 자꾸 왔다갔다해서 정신이 없을꺼야.
하지만 르네상스시대를 연구하고 공부하다보면 어쩔 수 없어.
A를 알기 위해선 B를 알아야하고, A의 시대상을 그려봐야하고 A의 가문을 들여다봐야하니까 말야.
쓰는 나도 벅차서 어지러울 판인데, 읽는 여러분들은 어쩔까. 조금 걱정이 돼.
하지만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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