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수 없는 악인 - 알버트 피쉬 [Albert Fish ]
포스팅을 하다보면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이거나 혹은 정말 비열하다 생각하게 되더라도,
안쓰러운 유소년기를 보낸 싸이코패스들을 접하게 될 때면
그래도 측은지심이라는 게 간혹 생겨서 그들이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라며
안타까워 하기도 했던 것 같아.
그 대표적인 예가 예전에 포스팅했던 '메리 벨' 과 같은 사람들인데
그들은 그래도 어쩌면.. 이라는 생각에 마냥 미워할 순 없었어.
그런데 오늘 포스팅을 하게 될 알버트 피쉬 같은 인물은 정말이지 '두 번 다시 없을 악인' 이라는 생각은 물론,
절대 그 누구도 용서치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기도까지 하게 되는 인물이야.
대부분의 싸이코패스들의 성향을 보면,
자기보다 약한 이들을 대상으로 삼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그들 중에서도 악질 중에 악질은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버러지들이라고 난 생각해.
그래서 인지 앞서 포스팅했던 '안드레이 치카틸로' 라던가 '존 웨인 게이시' 등의 인간들은
포스팅 하는 내내 치를 떨어 포스팅 해놓고 다시 한번씩 읽어보는 버릇이 있는 내가
두 번 다시 글을 쳐다도 보지 않았었어.
아마, 지금 포스팅하게 될 인물 역시 마찬가지 일 듯 싶어.
자, 그럼 내 식대로의 이야기,
어마어마한 버러지 같은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 시작할께.
이 노인네는 일단 백과사전에도 이름을 올리는 대단한 인물이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에선 그를 뭐라고 설명하는지 잠시 살펴볼께.
앨버트 피시(Albert Fish, 1870년 5월 19일 ~ 1936년 1월 16일)는 미국의 연쇄 살인자, 식인이다. "보름달 미치광이"(Moon Maniac), "그레이 맨"(Gray Man)", "위스테리아의 늑대인간"(Werewolf of Wysteria), "브루클린 흡혈귀"(Brooklyn Vampire), "부기맨"(The Boogey Man) 등의 별명으로 알려져있다. 정확한 숫자는 분명하지 않지만, 다수의 아동을 폭행해 살해하였고, 인육을 먹을 목적으로 살해된 아동도 있다. 또한 성인도 살해되었다고 한다. 1910년에서 1934년까지 400명을 죽였다고 자백하였다. 덧붙여 "보름달 미치광이 (Moon Maniac)"라는 별명은 범행이 보름달이 뜬 날에 많았 것에 기인한다. 미국 범죄 사상 최악의 살인마로 불리고 있다.
붙여넣기 ㅇ_ㅇb
사진으로 보면 한낱 힘없고 인자해보이기까지 하는 이 늙은이가 바로 미국을 공포에 도가니에 몰아 넣고
뒤흔들었던 알버트 피쉬라는 인물인데 언제나처럼 이 인물의 어린시절부터 이야기 해보자.
알버트 피쉬. 그는 1987년 5월 19일 워싱턴에서 가난한 대가족의 장남으로 태어났어.
훗날 그의 증언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 랜달 피쉬는 프리 메이슨 단원이었다고 해.
여기서 잠깐, 프리메이슨에 대해서 좀 알아볼께.
프리메이슨이란
18세기 초 영국에서 시작된 세계 시민주의적,인도주의적 우애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라고
두산백과에서는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이 단체는 비밀 단체의 성격을 띄는 친목단체로
목적을 이야기하자면 세계동포주의적 박애사상 함양과 회원간의 우호 증진을 목표로 하면서
자선과 박애 사업을 하는 단체야.
절대자의 존재와 영혼의 불멸을 믿는 '성인 남자' 에게만 가입이 허용되는 조직으로
조지 워싱턴, 아마데우스 볼프강 모차르트, 철학자 몽테스키. 알폰스 무하외
다수의 유명인들이 프리메이슨의 회원으로 활동했다고 알려져있지.
프리메이슨 단체는 기독교에서 배척받아 비밀조직화 되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기독교와는 사이가 좋지 않은 단체기 때문에
요즘 기독교 내에서 음모론을 제기한다고 말들이 많은가봐.
난 기독교도 아니고 프리메이슨을 지지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고
다음으로 넘어갈께.
그는 훗날 자신의 배경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이야기 했어.
"나는 1870년 5월 19일 워싱턴에서 태어났소.
내 아버지는 랜달 피쉬로 프리메이슨의 32급 단원이었으며,
지금은 의회 묘지의 프리메이슨 본부 구역에 묻혀있지.
아버지는 포토맥 강을 따라서 워싱턴과 버지니아 주 마샬 홀을 오가던 배의 선장이셨소."
아무튼 그런 그의 아버지는 1875년 10월 15일 급사하게 되면서 알버트의 삶은 큰 전환점을 맡게 돼.
그의 어머니는 알버트를 워싱턴에 있는 'St. John's' 라는 고아원으로 보내버렸어.
이유는 명확하지 않으나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계의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
그런데 고아원에서 알버트는 참 힘든 시간을 보내.
그의 어릴 적 이야기를 잠깐 들여다 보자.
알버트는 나이에 비해 왜소한 체격으로 동갑내기 친구들에게
곧잘 무자비한 구타를 당하기도 하고 약올림의 대상이 되었어.
친구들은 그를 여자아이들이 보는 앞으로 데려가 마구 때리고 바지를 벗겼어.
그리고 명령했어.
"자, 너의 그 잘난 물건을 꺼내 이곳에서 자위를 해. 이건 명령이야.
거절하면 넌 지금 이순간부터 두발로 걷지 못하게 만들어 버릴테야.
하지만 니가 그것을 해내면 우린 지금부터 널 때리지 않을께. 약속해."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지는 폭행에 지칠대로 지쳐버린 알버트.
그는 살기 위해 자신의 초라한 물건을 꺼냈어.
여자아이들이 꺄악꺄악 소리치며 도망가자 주변에 친구들이 박장대소하며 말했어.
"이봐 알버트. 아까의 약속은 무효야. 구경꾼들이 죄다 도망갔잖아?
하지만 시도는 좋았어. 자, 다음엔 꼭 성공해보자!"
그들은 여전히 알버트를 구타했고, 수시로 그의 성기를 꺼내 자위하도록 명령했어.
약, 2,3년 간 지냈던 고아원의 생활은 알버트에겐 지옥이었지.
알버트는 종종 자신을 만나러 오는 어머니에게 울면서 매달렸어.
"엄마, 날 이곳에서 꺼내줘요!"
그는 다시 어머니에게로 돌아오게 돼.
하지만 그는 어머니에게 정상적인 훈육을 받는 것을 이내 포기했고
어머니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 그는 점점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며 자라게 되지.
수 없이 많은 가출을 일삼고, 마약을 하고, 노점상을 터는 등 그의 비뚤어진 일탈은
그의 10대 시절을 검은 색으로 잔뜩 물들였어.
그렇게 시간은 흘러 그가 스물여섯이 되던 해 피쉬는 열아홉 살에 여자와 결혼을 하게 돼.
결혼을 해 아내와 자그마치 여섯 명의 아이를 낳고 사는 동안도 그의 비뚤어진 일탈은 멈출 줄 몰랐고,
그래서였는지 아니면 아내가 워낙에 남자를 좋아하는 인물이어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막내 아이가 세살이 되던 해, 피쉬의 아내는 자신의 집에서 하숙하던 잡역부와 바람이 났어.
알버트는 이내 그것을 눈치 챘는데 처음에 알버트는 그 사실을 알고 괴로워한 것이 아니라
출근하는 척 나갔다가 집에 몰래 숨어들어 아내와 하숙남의 정사 장면을 몰래 훔쳐보기도 했다고 해.
그리고 그런 행위가 지겨워졌을 즈음,
알버트는 아내에게 그 사내와의 관계를 정리할 것을 요구했지.
하지만 아내는 듣는 둥 마는 둥 그저 신통치 않은 대답을 했는데
알버트가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거나 반성하는 기미가 전혀 없었어.
그리고 며칠이 지나 알버트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집안이 썰렁한거야.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집에 쓸만한 가구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는데
자신의 아이들이 쓸 매트리스까지 모두 팔아치운 후 아내는 그 사내와 함께
감쪽같이 사라졌어.
알버트는 그때부터 어머니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으로 상처받은 정신상태와
바람나 도망간 아내로 인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기 시작했지.
그는 그 후로 세 명의 여성과 결혼을 했지만 그저 같이 사는 사이일 뿐 호적상의 결혼은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첫 번째 아내와 서류상의 이혼을 하지 않아서 였다고.
그때부터였을꺼야. 그가 서서히 미쳐가고 있던 게.
피고름이 차있던 주머니가 펑! 하고 터지는 순간을 맞이한거지.
그리고 그가 서서히 미쳐가고 있다고 가족들이 느끼는 사건이 있었는데,
어느 해에 알버트는 가족을 데리고 뉴욕주에 위치한 산장으로 놀러갔어.
알버트의 가족들은 오랜만에 얻은 휴가에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는데
아버지인 알버트의 괴이한 행동을 목격하게 되지.
"나는 그리스도다 !!!!!!!!!!!!!!!!!!!!!!!!!!"
산장 밖으로 우거진 숲을 바라본 채 허공에 주먹질을 해대며 같은 말을 지속적으로 반복했어.
"I am Christ!!!!!!!!!!!!!!!!!!!!!!!!!!!!!!!!!"
훗날 법정에서 그의 자식들은 아버지의 그 모습을 보며 공포감을 느꼈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의 눈에선 광기가 뿜어져나왔어.
그리고 그 날 저녁, 자식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점점 미쳐가고 있음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어.
그 날은 보름달이 환하게 뜬 날이었는데 저녁 준비를 마치고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은
방으로 들어가 쉬고 있는 알버트를 기다리며 주린 배를 진정시키고 있었어.
아무리 기다려도 알버트가 나오지 않자 그와 살고 있던 두번 째 동거녀가 알버트를 부르러 방으로 갔어.
"꺄아아아악"
그녀는 소리를 지르며 뒷걸음질을 쳤지.
발가벗은 몸으로 허공을 향해 무어라 말하고 있는 알버트를 본거야.
알버트는 문이 열리자 아까와 같이 소리치며 ( I am Christ!!!!! ) 밖으로 뛰어나갔고
환한 보름달을 맞으며 그 아래서 알 수 없는 춤을 추었어.
그의 춤은 꽤 오랜시간 지속되었고 가족들이 놀란 마음을 추스리고 알버트를 집안으로 이끌자
그는 식탁에 앉아 자신의 몫으로 올려진 고기를 보더니 접시를 중앙으로 미뤄놓고는
싱크대로 가 조리가 되지 않은 날 고깃덩어리를 들고는 마구 뜯어먹었어.
가족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놀랐고 그런 알버트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식욕을 잃고는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지.
알버트의 이 이상행동은 어쩌면 그의 가족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의 아버지 형제 중 하나는 종교적으로 정신이상이 있었고, 배다른 형제 하나 역시도 정신병력이 있었으며,
남동생 하나는 정신박약이었는데 훗날 뇌수종으로 죽었고,
고모 한 명 역시 정신이상으로 정신병동에서 생을 마감을 했고,
또 다른 남자 형제는 만성 알코중독자에, 여동생 또한 정신장애에 시달렸다고 해.
알버트의 이상행동은 날이가면서 더욱 심해져서 자신을 학대하기에까지 이르렀는데
그는 어느 날 거리를 걷다가 버려진 노를 줏어왔어.
그 노에는 못들이 여러개 박혀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동거녀들에게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엉덩이를 때려달라고 졸랐다고 해.
만약 이를 거부하면 그는 하루종일 소리를 지르고 홀딱 벗은 채로 거리를 돌아다녔으므로
동거녀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어.
볼기를 맞을 때마다 알버트 시뻘건 피칠갑이 될 때까지 지속하기를 원했고,
고통이 더하면 더할 수록 기뻐했다고 해.
또 한번은 알콜로 흠뻑 적신 솜뭉치를 자신의 직장에 쑤셔넣고 불을 붙이기도 하고,
(이 짓은 피해 아동들에게도 일삼았어.)
인두와 부지깽이를 사용해 끊임없이 자신의 몸을 지져댄다거나,
수 많은 바늘들을 자신 몸 속으로 꽂아 넣기도 했대.
더구나 바늘의 대부분을 생식기 근처에 쑤셔넣었는데 간혹 바늘을 빼는 것을 그만두고
몇날며칠을 돌아다니다가 바늘들이 몸 속 안으로 들어가 빼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데도
알버트는 전혀 개이치 않았다고.
훗날 그의 말을 들은 법정은 그의 말이 진짜인지 가늠하기 위해 의사를 불러 X-Ray를 찍게 했는데
그의 골반 부위에는 약 29개의 바늘이 있었어.
그의 말은 진짜였던거야.
(그의 골반 X-Ray)
여태까지 그의 유년시절과 그의 병력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놨어.
자, 그럼 지금부턴 그의 잔인하고 교활한 범행이야기와 체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알버트의 첫 살인의 기록은 1910년이지만 알버트는 자신이 언제 어디서 누구를 처음으로 죽였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기억조차 할 수 없는 노인이 되어있었거든.
일단 그가 얼마나 비열하고 추악한 인간인지에 대한 몇가지 사례를 이야기 할게.
1924년 7월, 스테이튼 섬의 전원지대 찰튼 우즈에서 프랜시스 맥도넬이라는 이름의 아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어.
소년의 엄마는 근처에 앉아서 소년의 동생인 딸아이를 보살피며 중간중간 혼자 잘 놀고 있는 아이를 체크했지.
근데 멀리서 회색 머리와 회색 콧수염을 기른 깡마른 노인이
자신의 아이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목격해.
노인의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고 끊임없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어.
여자는 노인의 모습이 사뭇 이상해서 주시했는데 이때 여자와 노인의 눈이 마주쳤지.
노인은 낡아 빠진 짙은 갈색의 중절모를 살짝 벗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는 몸을 돌려 거리끝으로 사라졌어.
이상한 노인이다. 라고 생각은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던 소년의 엄마는
바람이 차지는 것을 느끼곤 딸아이를 안고 일어났어.
"프랜시스, 추워지는구나. 들어가자."
"엄마, 나 공터에 친구들과 공놀이를 다녀오면 안되요?"
"곧 저녁시간인데 안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엄마, 제발요. 공놀이가 너무나 하고 싶어요."
"좋아 프랜시스. 대신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기 전에 들어오는 걸로 약속한다면 허락할께.
지난 번처럼 해가 저물고도 들어오지 않아서 아빠와 내가 널 찾으러
공터로 향하는 일이 생긴다면, 두 번 다시 공터에서 공을 차는 일은 없을거야."
"네! 좋아요. 저녁을 먹기 전에 꼭 돌아오겠어요!"
아이는 튕기듯 일어나 쏜살같이 공터를 향해 내달렸어.
아이의 엄마는 고개를 얼굴에 미소를 띄운 채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안으로 들어갔지.
그 날 저녁이 되어도 프랜시스는 돌아오지 않았어.
경찰이었던 소년의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찾을 때까지
소년의 엄마는 젖먹이던 딸에게 정신이 팔려 프랜시스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차였어.
"프랜시스는 어딜 갔어?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데, 당신 아이가 없는 걸 몰랐어?"
"공터에 갔어요. 어휴, 그렇게 늦지 말라고 말했는데 또 약속을 어기다니.
당신, 프랜시스에게 엄하게 경고를 주는 것이 좋겠어요.
매번 이렇다니까요. 당분간 공터에 나가지 못하는 걸로 벌을 주어야겠어요."
아이의 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공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어.
하지만 아이들이 뛰어놀아야할 공터엔 버려진 공조차 없었어.
이미 늦은 시간이었기에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들어간 다음이었지.
아이의 아버지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
불안이 그를 엄습했지만 그는 경찰답게 우선 주변 이웃들에게 아이에 대한 탐문을 시작했어.
"오- 프랜시스의 아버지 아니세요.
들어오세요. 많이 추워졌어요."
"아, 늦은 시간인데 실례가 많아요. 다른 게 아니라 프랜시스가 아직 집엘 돌아오지 않아서요.
혹시 저희 아이 보지 못하셨나요?"
"어머 이런. 지금 시간이 몇시인데.. 아까 저희 아이를 데리러 공터에 갔을 때만해도
함께 공을 차고 있는 걸 보았어요.
저희 아이를 데려오며 어서 집으로 들어가라고 말까지 했는걸요.
그 후엔 보질 못했어요."
"네. 감사합니다."
아이가 유괴되었다는 걸 육감적으로 알아차린 아이의 아버지는 즉각 수색대를 조직했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또 다른 이웃이 프랜시스를 마지막으로 목격했다고 진술하면서
수색대가 꾸려진지 단 2일만에 소년을 찾았어.
"프랜시스라면 한번도 본 적없는 은발에 가까운 노인과 함께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봤어요.
노인이 프랜시스를 불러 뭐라고 말을 하니까 프랜시스가 웃으며 노인의 손을 잡고 숲으로
끌고 들어가던걸요? 전 프랜시스의 할아버지 쯤 되는 줄 알고 따라갈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수색대는 숲으로 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숲 속에서 나뭇가지에 덮힌 채 숨이 끊어져있는
소년의 시체를 발견하게 돼.
처음 수색대는 소년을 찾은 후 아이의 아버지에게 시체를 보여야할지 말아야할지를 고민했어.
이유가 소년의 시체가 워낙 심하게, 또 끔찍하게 손상되어 있었기때문이었어.
아이의 옷은 전부 발기발기 찢겨져 나갔고 아이가 하고 있던 멜빵은 풀어져 목이 졸려 있었으며,
심하게 두들겨 맞아 아이의 이름이 프랜시스라는 사실을 모르고 시체를 찾았다면
아이의 신원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얼굴이 부어있었어.
때문에, 경찰들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는 늙은 떠돌이 남자에 대해
그는 노인이 아닐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어.
혹은 늙은 떠돌이와 함께 다니는 공범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비쩍 마르고 볼품없었다는 증언에 비해 아이의 구타정도가 심했기 때문이야.
범인을 찾기 위해 맨하탄 지문 전문가들과 250여명에 달하는 사복경찰들이
사건에 투입되어 대규모 수색을 벌였지만 아이의 엄마가 보고 이웃이 목격한
'회색머리에 가까운 은발의 늙은 떠돌이 남자' 는 끝끝내 찾을 수 없었지.
그리고 1927년 2월 11일.
브룩클린 시가지(쉽게 말해 브룩클린의 중심부)에 위치한
전차를 운행하던 운전사 조세프 미한은 이상한 노인과 아이를 목격하게 돼.
노인과 함께 앉아있는 4살쯤 되어보이는 어린아이는
꽤나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코트도 입지 않은 채 연신 울고 있었고,
노인은 신경질적으로 아이의 울음을 무력으로 저지시키고 있었어.
전차가 역에 도착하자 노인은 신경질적으로 아이를 끌면서 전차에서 내렸고
조세프의 시야에서 사라졌지.
훗날,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의 이름이 밝혀지는데,
같은 날 실종신고 된 '빌리 개프니'였어.
아이의 나이는 4살로 같은 이름의 3살배기 빌리와 아파트 현관 바깥에서 놀고 있었어.
12살의 같은 아파트에 사는 소년이 그 둘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여동생이 잠에서 깨어 우는 소리를 듣고 집안으로 들어갔다가 단지 몇 분 후 여동생을 안고
아파트 현관으로 나오자 아이들이 감쪽같이 사라진거야.
굉장히 어린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소년은 바로 3살짜리 빌리의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아버지의 발빠른 신고로 3살짜리 빌리는 근처 건물 옥상에서 자신의 아들을 발견할 수 있었어.
그런데 문제는 4살짜리 동명의 빌리였어.
빌리는 그 어디에서도 모습을 찾을 수 없었어.
경찰들이 3살 빌리에게 물었어.
"빌리 개프니는 어디있니?"
그러자 아이가 대답했어.
"부기맨(boogeyman, 못된 아이를 데려간다는 귀신)이 데려갔어요.
울지 말라고 말했는데 자꾸 우니까 .. 저는 울지 않아서 이곳에서 아빠를 기다릴 수 있었죠."
하지만 경찰들은 이 어린 아이의 진술을 무시했어.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치부한 그들은 아이가 공장지대에 들어가 길을 잃었거나,
혹은 몇 블럭 떨어진 고와누스 운하에 빠졌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쪽에 주력해 수색했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었지.
빌리는 이미 악마인 알버트의 손에 이끌려 전차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 있었으니까.
알버트는 훗날 자신의 여죄를 묻는 심문과정에서 빌리를 납치하던 날
자신을 똑똑히 목격한 조세프의 고발로 빌리의 살인을 인정하고 진술하는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해.
(밑의 진술은 다소 자극적인 표현들이있으므로 비위가 약하거나,
마음이 여리거나 심장이 자주 쫄깃해지는 사람들은 읽지 않고 패스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거야.
써야하는 나조차도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추기를 거부하니까.)
"그 끊임없이 울던 겁쟁이 빌리말이오? 아, 물론 그 아이 역시 내가 죽였소."
살해방법에 대해서도 표정에 변화없이 아니 중간중간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듯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알버트의 모습에 모두들 놀랐지.
빌리의 살해수법에 대해서는 대화체로 만들어봤어.
"그 겁쟁이 빌리를 난 라이커 거리에 있는 쓰레기 장으로 데려갔지.
그곳에 외딴 집이 한 채 있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난 이곳저곳을 떠도는데 간혹 버려진 집을 목격하면 잘 기억해 놓는 버릇이 있지.
아주 쓸만한 기억력이라고 난 생각하오.
빌리를 그쪽으로 데려가자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하지 않소?
아니, 어떻게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울어제낄 수가 있는지.. 하, 시끄러워서 원.
난 어서 빨리 그 아이를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침착했다오.
일단 아이를 조용히 시키기 위해 쓰레기장을 뒤져 천 조각을 몇개 줏은 다음
아이의 옷을 벗겨 쓰레기장에 버려버렸소.
아이를 집으로 끌고 들어가 그 시끄럽게 울어제끼는 입에 쳐넣어 입을 틀어막았지.
아이를 만난 뒤 한 일 중에 제일 만족하는 부분이라오.
아이는 겁에 질린 듯 입에 제갈이 물렸음에도 악을 쓰다가 나중엔 눈만 껌뻑이더군.
그땐 사랑스럽기까지 했어.
일단 난 아이의 손과 발을 뒤로 묶은 다음 쓰레기장에 버려두었던 옷을 다시 주어
태워버렸소. 신발은 그냥 쓰레기더미로 던져버렸고.
그 일을 해내는데 이미 새벽 2시가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난 다시 집으로 전차를 타고 돌아왔소.
아, 목이 타는데 미안하지만 물 한잔 마시고 합시다."
긴장감이 맴도는 진술실에서 그는 당당함을 잃지 않았고,
나라를 구한 구국영웅이나 되는 양 당당했어.
아니, 오히려 자신의 한 일이 대단한 양 자랑스럽게 떠들고 있었지.
시원하게 물을 들이킨 후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실로 엄청났어.
"다음 날 난 늦게까지 잠을 잤지. 마음이 편했어. 난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고,
내가 좋아할 일을 곧 할 수 있다는 안도감은 날 깊은 잠에 빠지게 했던거지.
오후 2시쯤인가. 나는 연장과 고양이 꼬리 채찍을 챙겨서 아이가 있는 빈집으로 향했지.
아이는 날 보자 반가워하는 눈치더군요. 하긴 그 어린 것이 어두운 곳에서 얼마나 무서웠겠소.
좀 더 아이에게 일찍 가지 못한 게 조금은 미안하더군.
아이에게 다가가 제갈을 벗겼는데 또 자지러지게 울더군.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소. 난 아이의 엉덩이를 피가 흘러내릴 때까지 채찍질 한 것 같소.
아이가 잠시 기절을 하니 참 좋아하더군. 그 고요함도 오래가진 않았지만 말야.
시끄러워서 가져간 칼로 귀와 코를 잘라버렸어.
녀석 또 기절을 하더군. 그리곤 아이의 입 안으로 칼을 넣은 뒤 귀 밑까지 찢어냈어.
그리고 눈알을 팠지. 어, 그래. 맞아. 그때쯤 아이가 죽은 것 같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의 배에 칼은 꽂고 아이 몸에 입을 댄 채 흘러나오는 피를 마셨지.
참, 달았소. 내 몸은 언제나 싱싱한 피를 필요로 하거든.
그 후? 아, 시체 말이요? 시체처리야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없지. 암. 난 그것만큼은 자부해.
일단 아이를 잘게 잘라 낡은 감자 포대 네 개를 주워다가 그 안에 돌멩이를 모아 담은 다음
아이에게서 잘라낸 코와 귀, 뱃살 조각들 녀석의 고환과 성기,
그리고 각각 엉덩이 부위에서 잘라낸 2인치 정도의
살점들을 골라낸 것드를 신문에 싸서 따로 챙겨 둔 다음,
머리와 발, 팔, 다리를 나눠서 각각의 감자 포대에 넣었지. 꽤나 무거워서 그걸 하나씩 들어다가
노스 비치로 가는 길가에 쭉 널려 있는 흙탕물 구덩이 있잖소? 거기에 던져 버렸소.
꽤나 힘든 작업이었다오.
응? 아, 따로 챙긴 살점들 말이오? 그걸 어떻게 했냐니? 그레이스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이 그걸 묻다니.
아둔한거요? 아님 멍청한거요?
당연히 난 그 살점들을 집으로 가져가 요리해 먹었소.
어떻게 해먹는지 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위가 바로 신체 앞부분인데 고환과 뱃살, 그리고 엉덩이 부위지.
일단 귀와 코, 뱃살로 양파, 당근, 무우, 샐러리, 소금과 후추를 넣은 스튜를 만든 후,
엉덩이 살을 두 조각으로 나눈 다음 고환과 성기의 껍질을 벗긴 후에 물로 깨끗이 씻었지.
아무리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고환하고 성기엔 이물질이 많아. 대체 뭘 먹고 사는지 말야.
그 뒤에 베이컨을 꺼내 두 조각으로 나눈 엉덩이 살에 하나씩 얹고
오븐에 구워냈지. 양파 4개를 준비하고 고기를 15분 정도 굽고
따로 만들어 두었던 육수를 계속 고기 위에 끼얹었어. 그래야 고기와 육즙의 맛이 좋아지니까.
내가 먹어본 고기 중 나는 으뜸을 맛봤지. 하, 그 맛이란 실로 놀라웠어.
칠면조? 하. 지금 날 웃기는 거요? 칠면조 따위와는 비길 게 아냐.
그 부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고 고기에서 나는 그 단백함과 고소함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니까.
한번 맛을 보면 절대 중독되서 두 번을 먹지 않고는 베길 수가 없다오.
난 나흘 정도에 걸쳐 고기를 모두 먹었소.
아이의 고환은 땅콩처럼 맛있는데 성기는 너무 질겨. 씹지를 못하겠더군.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 버려버렸소."
위에 대화체는 내가 조금 각색하긴 했지만 잔인함으로 따지면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걸 꼭 말해두고 싶어.
그는 장장 두 시간에 걸쳐 빌리의 시체를 어떻게 해치웠고 어떻게 먹었으며
어떤 맛이었는지를 아주 상세하게 진술했다고 하고,
그의 얼굴엔 황홀경을 맛보는 듯한 표정이 드리워져있었다고 해.
잔인하다. 그래 이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야만적이다? 이것으로 만족할까?
세상에 모든 잔인하고 더럽고 추악한 단어 중에 이 버러지만도 못한 알버트의 행위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과연 존재할까? 없다고 봐.
쨋든, 빌리를 그렇게 죽인 다음에도 늙은 살인마는 자신의 욕망을 다 채우지 못했어.
그는 1928년 5월 25일 뉴욕 월드 신문의 일요일 판으로 나온 작은 광고를 보았어.
"18세 청년, 농촌 일자리를 구함. 에드워드 버드. 15번가 서쪽 406번지."
잠깐 에드워드 버드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할께.
에드워드 버드는 모험심이 강한 18세 소년으로 부모님이 처한 처절한 가난을
본인의 힘을 극복하기 위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아주 착한 청년이었어.
그의 집은 아버지와 어머니, 어린 동생 4명과 함께 뉴욕의 낡아빠진 아파트에서
더러운 환경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시골의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거야.
광고가 난 다음 주 월요일인 5월 28일.
에드워드의 집엔 그의 어머니 델리아 부인이 딸과 함께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깔끔한 옷차림의 노인이 찾아와 자신을 소개했어.
"난 프랭크 하워드라는 사람으로 롱 아일랜드 파밍데일에서 농부로 일하는 사람이라오.
에드워드라는 사람의 광고를 보고 이렇게 찾아왔소."
델리아는 딸 베아트리스를 시켜 근처에 있는 오빠를 불러오게 했지.
노인은 꽤나 신사적이었고 베이트리스에게 온화한 미소로 심부름 값이라며 동전 한 개를 주기까지 했어.
에드워드를 기다리는 동안 마주앉게 된 델리아와 프랭크.
델리아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어.
곧 자신의 아들과 함께 일하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알아두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던거야.
"난 수 십 년을 이곳저곳의 도시를 떠돌며 실내 장식가로 일해 돈을 모았지요.
도시 생활이라는 게 워낙 각박해서 성격엔 잘 맞지 않았지만
내겐 은퇴 후 농장을 꾸리리라는 작은 꿈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일의 특성상 이곳저곳을 떠돌다보니, 아내는 참 많이 외로웠던가봅니다.
10년 전 여섯이나 되는 아이들을 두고 홀연히 사라졌지요.
전 그 길로 실내 장식을 그만두고 롱 아일랜드로 내려가
그간 저축해놓은 돈으로 농장을 사고 그 후부터 주욱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현재는 아이들도 많이 커서 농장 일을 곧잘 도와주기도 하지요.
농장엔 5명의 일꾼과 스웨덴인인 요리사 덕분에 농장은 나날이 잘 돌아가고 있어요.
수 백 마리의 닭고 6마리의 젖소를 키우고 있죠.
그런데 일꾼 중 제일 싹싹하던 녀석이 결혼을 하면서 도시로 떠난다고 하더군요.
그러던 중 아드님의 반가운 광고를 본겁니다."
말을 하는 노인의 목소리는 안정감 드는 중저음에 상냥함이 묻어있었고,
은발에 가까운 회색 머리털은 늙은 노인답지 않게 단정하게 정리된 채였고,
나이에 비해 풍성한 회색의 콧수염은 그를 더 온화하고 인자하게 보이게 하는 인상이었어.
델리아는 그의 상냥함이 상당히 흡족해하며 대화를 이어가던 차 에드워드가 도착했고
델리아는 노인을 대신해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만족해하며 전달했어.
노인은 에드워드에게 주 15달러를 주기로 약속했고,
외로울 수 있으니 에드워드의 친구 윌리도 함께 고용하겠다고 말해 에드워드의 신임을 얻었지.
노인은 정중하게 인사하고 토요일에 돌아와 에드워드와 윌리를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하곤 떠났어.
하지만 토요일 프랭크는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 메모가 도착했어.
메모는 프랭크가 직접 쓴 것이었어.
"예정됐던 일의 진행이 조금 지연되고 있는 관계로 오늘 찾아뵙는 약속을 부득이하게 지키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 꼭 전화드리죠."
그리고 다음 날 11시 경, 하워드는 전화가 아닌 직접 방문을 했어.
하워드의 손에는 딸기와 신선한 크림 치즈 항아리가 들려있었지.
"제 농장에서 직접 가져온 것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그 날은 에드워드의 아버지인 앨버트 버드 시니어도 집에 있었는데,
그는 인상 좋은 프랭크와 아침을 같이 하길 원했고 그 들은 노인과 함께 즐거운 아침식사를 했어.
앨버트는 노인의 인상에 대해 훗날 이렇게 말해.
"그는 신뢰감 있고 품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점심시간까지 주욱 이어졌는데 때마침 밖에 나갔던 10살의 소녀 그레이스가
집으로 돌아왔어.
사진으로 보아도 상당한 미모를 가지고 있던 그레이스.
프랭크는 그레이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단정한 외모와 상반되게 발랄한 소녀에게
시선을 빼앗긴 프랭크는 그레이스에게 다가가 주머니에 있던 돈 뭉치를 꺼내쥐어주며 물었어.
"참 예쁘게 생긴 아이로구나.
내가 좀 있을 여동생의 생일파티에 가져갈 선물을 사야하는데
돈이 충분한지 알 수가 없구나. 미안하지만 이것을 좀 세줄 수 있겠니?"
그레이스는 물론 버드가족은 노인이 꺼낸 돈뭉치를 보고 사뭇 놀랐다.
돈뭉치는 슬쩍 보아도 꽤나 큰 돈이었고 그들에게 그렇게 큰 돈은 처음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92달러 50센트요. 충분히 사용하시고도 남을 정도인 것 같은데요."
"오, 넌 참 똑똑한 아이로구나. 생일파티에 가본 적 있니?"
"네?"
"자, 이건 여동셍 베아트리스와 캔디를 사 먹으렴."
노인은 그레이스에게 50센트를 내밀고 자세를 바로 잡고 버드부부에게 말했어.
"생일 선물을 고르는 것도 그렇고, 이 노인네가 뭘 알아야 말이죠.
더구나 여동생에겐 그레이스 만한 손녀가 있는데 둘이 친구가 되면 참 좋을 것 같군요.
괜찮으시다면 그레이스를 여동생의 생일파티에 데려가도 좋을까요?"
이즈음에 버드 부부는 이미 이 늙은 신사에게 마음을 온전히 빼앗긴 뒤였기에
부부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레이스와 늙은 신사의 동행을 수락했어.
"에드워드, 자네는 친구 윌리와 함께 떠날 채비를 하고 있게나.
우린 저녁 8시 기차로 떠나게 될거야.
아, 그리고 델리아 부인 이건 제 여동생의 집 주소입니다.
혹시 걱정하실까봐 남겨놓고 가겠습니다.
저녁식사 전엔 돌아올테니 큰 걱정은 안해도 됩니다."
[137번가 콜럼부스 XX아파트 405]
델리아 부인은 그레이스가 가진 것 중 제일 좋은 코트를 입혔고,
귀여운 장식이 달린 회색모자를 쓰게 했지.
이만큼 버드부부가 가진 노신사에 대한 짧은 만남의 신뢰는 엄청났어.
그리고 저녁식사 시간이 다 되도록 아니, 그 시간을 넘고 넘어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그레이스는 돌아오지 않았어.
에드워드는 불안한 마음에 경찰서로 달려갔지.
"형사님. 아무래도 제 여동생과 저의 고용주 프랭크 하워드씨께서 실종된 것 같습니다.
어제 저희 집에서 점심을 먹고 여동생의 생일파티에 간다고 나선 두 사람이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어요. 분명히 저녁식사시간 전엔 돌아온다고 했는데..
두 사람에게 큰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해요."
"혹시 간다고 한 곳의 주소를 알고 있습니까?"
"네, 가지고 왔습니다."
형사는 주소를 보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의 표정은 상당히 굳어있었다.
"이런 주소는 없습니다."
에드워드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어.
그는 그럴리가 없다고 믿었지만 형사의 말은 사실이었어.
그런 주소는 존재하지 않았거든.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에드워드는 롱 아일렌드의 파밍데일이라는 농장을 조회해줄 것을 요청했어.
그리고 얼마 뒤 그는 형사에게 그런 농장은 없다는 천청벽력같은 말을 전해들었어.
그 친절하고 온화한 노신사는 사기꾼이었던 거야.
예쁜 코트를 입고 회색의 모자를 쓴 환하게 웃는 그레이스의 얼굴은
에드워드가 본 마지막 모습이었지.
1934년 11월.
그레이스의 실종 사건은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수사 중이었지만
모두 수사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지.
그레이스의 실종 사건을 수사하던 윌리엄 킹이라는 형사는 한가지 묘책을 생각해냈어.
1934년 11월 2일
윌리엄은 칼럼니스트 윌터 윈첼을 불렀어.
"이번 칼럼에 이것을 꼭 내주게."
[그레이스는 6년 전 실종 당시 8살이었다. 실종사건 수사본부는 이 사건을 4주 안에 종결 짓거나
종결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그레이스의 실종사건은 미해결 사건으로 종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범인은 칼럼의 떡밥을 덥썩 물었어.
약 열흘 뒤 델리아 부인 앞으로 편지가 한 통 배달되었는데 부인은 문맹이었기에
이 잔인한 내용을 읽는 최악의 사태를 피할 수 있었지만
에드워드는 달랐어.
에드워드는 그길로 킹 형사에게 달려갔어.
편지의 내용은 아주 극악무도했고 잔인했으므로 버드부인은 이를 강하게 부정했어.
아니, 이 편지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어야만 했어.
편지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적어볼께.
이건 각색한 내용이 아니란 것만 알려둘께.
“친애하는 버드 부인께
1894년, 제 친구 하나가 존 데이비스 선장이 이끄는 증기선 타코마 호에서 선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차이나의 홍콩으로 항해했지요. 도착 후 제 친구는 동료 두 명과 함께 육지에 올라가 술을 마셨죠. 그리고 돌아왔을 때 배는 이미 떠나고 없었습니다.
당시 차이나는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죠. 고기라는 건 종류를 막론하고 한 파운드 당 1달러에서 3달러 정도는 줘야만 살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은 너무도 심한 것이어서, 그들은 결국 굶어 죽지 않기 위해 12살 미만의 모든 아이들을 음식거리로 내다 팔았습니다. 14살 미만의 어린 아이들은 안심하고 길을 다닐 수가 없었죠. 어느 가게든 들어가서 스테이크나 스튜(역주 : 재료를 한데 섞어 소스 팬에 넣고 장시간 푹 끓여 만드는 서양식 찌개 요리)를 해먹을 고기를 살 수가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잘려진 신체 일부를 가지고 나와서 원하는 부위를 잘라주곤 했지요. 얇게 썬 송아지 고기처럼 팔리던 아이들의 엉덩이 고기는 맛이 가장 좋았기 때문에 값도 제일 비쌌습니다.
제 친구 존은 그 곳에 머무르면서 인육의 맛을 알게 되었죠. 뉴욕으로 돌아오면서, 그는 각각 7살과 11살인 소년 두 명을 몰래 잡아서 데려왔습니다. 자기 집에 데려가 옷을 벗기고는 묶어서 옷장 속에 가두었죠. 그리고 아이들의 소지품을 모두 태웠습니다. 친구는 날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몇 차례씩 아이들을 때리고 고문했습니다. 그래야 고기가 부드러워지고 맛있어지니까요.
친구는 우선 11살짜리 아이를 먼저 죽였는데, 왜냐하면 그 아이의 엉덩이가 더 살이 쪄서 살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친구는 머리와 뼈, 내장을 제외한 모든 신체 부위를 요리해서 먹었습니다. 엉덩이 살은 모두 오븐에 구워 먹었고, 나머지는 끓이거나, 익히거나, 튀기거나, 스튜 요리를 해서 먹었습니다. 다음 차례는 7살짜리였고 같은 방식으로 해먹었죠. 당시 저는 100번가 동쪽 409번지, 그러니까 바로 옆에 살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사람고기가 얼마나 맛있는지를 종종 말해주었고 저도 한 번 먹어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죠.
1928년 6월 3일, 저는 15번가 서쪽 406번지에서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치즈 항아리 1개와 딸기를 선물로 가져 갔구요. 우리는 점심을 함께 먹었습니다. 그레이스는 제 허벅지에 앉아서 저에게 키스했지요. 저는 그 아이를 잡아먹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레이스를 파티에 데려가겠다고 했을 때 말인데요. 아이에게 가도 좋다고 허락한 건 부인입니다. 저는 미리 준비해 둔 웨스트체스터(Westchester)의 빈 집에 아이를 데려갔죠. 집에 도착한 후 저는 그레이스에게 밖에서 기다리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들꽃을 꺾고 있더군요. 저는 위층으로 올라가서 옷을 모두 벗었습니다. 안 그러면 아이의 피가 옷에 묻을 테니까요.
준비가 끝나자 저는 창문으로 가서 그레이스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방에 들어올 때까지 옷장에 숨어 있었죠. 그레이스는 저의 벗은 몸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더니, 계단 쪽으로 달려가 도망치려 하더군요. 제가 잡아끌자 엄마에게 이르겠다고 말했죠.
우선 저는 아이의 옷을 벗겼습니다. 어찌나 발길질을 하며 물고 할퀴던지. 저는 목을 졸라 아이를 죽인 후, 살점을 제 집으로 옮기기 편하도록 시신을 여러 조각으로 잘랐습니다. 그리고 요리해서 먹었죠. 아이의 작은 엉덩이 살을 오븐에 구워 먹었는데 그렇게 달콤하고 부드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다 먹어 치우는데 9일 걸리더군요. 아이를 겁탈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았습니다. 따님은 처녀로 죽은 겁니다.”
이 편지의 필체는 6년 전 프랭크 하워드의 필체와 일치했어!!!
편지봉투는 사건의 중요한 단서가 되었는데 봉투에 찍힌 6각형의 작은 문장에 N.Y.P.C.B.A라는
여섯글자가 적혀잇었어. 이건 뉴욕의 민간 택시기사 복지 연합회의 약자였지.
윌리엄 형사는 연합회의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들은 즉시 도왔어.
그들의 회원 중 한명이 몇 주 전 자신이 편지지와 봉투 몇 장을 자신의 집으로 가져갔었다 말했는데
그의 집은 52번가 동쪽 200번지에 위치한 낡은 하숙집이었어.
윌리엄은 그곳으로 달려갔지.
하숙집엔 몸집이 큰 여주인이 있었는데 윌리엄은 다짜고짜 그녀에게 다가가
프랭크 하워드의 인상착의를 설명했어.
"어머! 지금 당신이 말하는 사람은 이곳에서 두 달이나 살았던 사람인데,
불과 이틀 전에 떠났어요. 아니 그런데, 그 사람이 이름이 프랭크 하워드라고요?
에이, 잘못 아셨겠지. 그 노인의 이름은 알버트 피쉬에요.
아, 그리고 그가 떠나면서 제게 자신의 아들에게서 편지가 오기로 되어있으니
보관해두면 자신이 수 일내로 찾으로 오겠다고 했어요."
오- 역시 신은 존재하는지 몰라.
언제나 극한의 아픔을 주다가도 꼭 끝에 가선 정의편을 들어주니 말이야.
아니, 어쩌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은총을 주는지도 모르지.
쨌든, 큰 수확을 거머진 윌리엄은 자신의 전화번호를 남겨놓고 돌아왔어.
그리고 12월 13일. 하숙집 여주인에게서 전화가 왔어.
하숙집을 급습하자 노인은 여유롭게 않아 차를 마시고 있었지.
그렇게 알버트는 체포되었어.
그리고 그레이스에 대해 알버트에게 직접 들을 수 있었지.
"난 처음 에드워드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어요.
단단한 체구의 청년을 유인해 죽이고 내 피에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그런데 그레이스를 보는 순간 목표를 바꿔버렸죠.
그레이스야 말로 진정으로 내 몸이 원한다는 것을 알았거든.
처음 그레이스를 데리고 브롱스행 기차를 타고 웨스트체스터의 워씽톤 마을로 향했는데
아, 그레이스의 기차표는 편도로 끊었지. 어차피 필요가 없을테니.
약 40분간 기차를 타는 내내 그레이스는 상당히 신이 나있었소.
워씽톤에 도착하고 위스테리아 별장이라 불리던 숲 속 한가운데 버려진 2층 집에 도착해서
잠시 그레이스가 마당에서 들꽃을 구경하는 동안 나는 2층으로 올라가 짐을 풀고 옷을 모두 벗었소.
옷에 아이의 피가 튀면 곤란하거든. 피는 잘 지워지지도 않잖아?
아이가 옷을 벗고 있는 나를 보고는 뒷걸음질치며 도망가려고 하더군.
나는 그레이스의 목을 잡아 단숨에 죽여버렸어.
성적 흥분이 된 건 사실이었지만 난 그애를 처녀인체 죽이고 싶었기에 희롱하진 않았소.
그레이스의 머리를 자르고 피를 따로 받은 뒤 마시고 살점을 떼어낸 후에 아이의 시체를
돌담 너머로 던지고 난, 처음으로 후회했소.
그 아이를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라도 바치고 싶은 심정이었어."
윌리엄이 물었어.
"대체 이런 끔찍한 짓을 도대체 왜 하는 겁니까?"
알버트가 대답했어.
"글쎄요... 나도 도통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소."
법정에 서게 된 알버트. 에드워드는 법정으로 들어서는 알버트에게 다가가 소리쳤어.
"이 개자식! 이 더럽고 흉악한 나쁜 자식!"
에드워드의 아버지가 알버트에게 다가 물었지.
"설마 날 기억하지 못하오?"
아주 덤덤한 표정으로 로봇처럼 알버트가 대답했어.
"압니다."
알버트의 기사가 신문을 장식하고 그의 얼굴이 신문에 실리자 빌리와 프랜시스의 측근들이
그 얼굴을 안다며 증언해주었고 그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꾸준히 덤덤하게 자신의 범행을 털어놓았지.
훗날 그가 수감 중일 때 프레데릭 워담박사가 그와의 면담을 하기 위해 찾아가 만난 첫 만남을 잊지 못한다고
자신의 저서 '폭력의 발현'을 통해 이야기했는데
알버트는 유순하고, 신사적이고, 인자하고, 공손하게 보였기 때문에 너무나 놀랐다고 했고,
더구나 만일 당신들이 자녀를 맡길 사람을 인상만 보고 뽑는다면 당신들은 분명 알버트를 선택할 것이다. 라고
할 정도니 뭐 그의 양면적 인상에 대해서 할 말이 없는거지.
워담 박사와 면담하는 내내 알버트는 자신의 상황을 남일 이야기 하듯 초연한 태도를 보였는데
"글쎄.. 나는 딱히 살고 싶다. 거나 꼭 죽고싶다. 이런 마음을 먹어본 적이 없어요.
내가 생각해도 나는 정상은 아닌 것 같아요. 난 나 자신을 단 한 번도 이해한 적이 없거든요."
라면서도 꽤나 양면적으로 자신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나는 언제나 누군가한테 고통을 주고 싶은 욕망이나 다른 이가 내게 고통을 줬으면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데, 고통을 주는 일은 무엇이든 재미있어 보여요."
라던가,
"내가 한 일은 분명히 옳은 일입니다. 만약 아니었다면 천사가 나를 가로 막았을 거에요.
성서에서 천사가 아브라함이 제 아들을 제물로 바치지 못하게 막았던 것 처럼 말입니다.
나는 하늘과 소통하는 유일한 사람이라오."
라는 둥 정신이상으로 보여질 법한 말들을 꺼내기도 했어.
그를 상담했던 워담은 면담이 끝난 후 그에 대해 결론을 내렸는데
알버트는 15명 정도의 아동을 실제로 죽였고 100여명 정도를 불구로 만들었을 거라고 판단했대.
그리고 그의 정신은 가족력으로 인한 이상증세를 분명하게 겪고 있다고 판단했어.
하지만 그의 정신이상 병력이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알버트의 재판은 다음과 같이 내려졌어.
1935년 3월 11일 월요일 뉴욕 주 화이트 플레인에 있는 프레데릭 클로즈 판사의 법정에서 배심원 단 대표가 말했어.
"우리는 피고가 기소된 대로 유죄라고 판단합니다."
알버트는 전기의자 처형이라는 판결을 받았고 판결이 내려지자마자 판사에게 감사했어.
"오- 내게 마지막까지 새로운 고통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준 판사님께 감사합니다.
이로써 나는 행복하게 죽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가 되는군요!
아- 벌써 그 날이 기다려지기까지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1936년 1월 16일 알버트 피쉬는 그토록 기다리던 전기의자로 처형되었어.